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문단 편집) == 2차전 (1952.2.11 ~ 2.13) == 2월 11일 최북단 무명고지 B쪽으로 적들이 접근해오자 이곳을 점령중인 3연대 2중대의 전초 소대는 미 8군의 올가미 작전[* 2월 10일 ~ 16일간 실시된 작전으로 적을 아군 진지 깊숙히 유인해 섬멸한다는 작전.]에 의거, 이들을 유인격멸하기 위해 무명고지 A로 은근슬쩍 철수하여 무혈 점령토록 하였다. 그 뒤 적의 본대 접근을 기다리다 날이 저물었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7사단의 우측을 맡은 5연대의 중앙 내면계곡에서 20여명의 적들이 2대대의 경계진지에 접근하였으나, 성과가 시원치 않자 그대로 돌아갔다. 2월 12일 새벽 1시 35분 2개 대대급의 중공군 무리가 암동계곡에 자리잡은 3연대 3대대의 경계선으로 침투해왔으나... '''아무도 없었고,''' 대신 그곳을 지키던 경계조가 주진지로 철수하기 전 [[인계철선|인계식]] 지뢰들을 곳곳에 설치해 놓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공성계|자신들이 지뢰지대 겸 미끼 진지에 잘못 진입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황급히 퇴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후 9시 15분에 중대규모의 중공군들이 무명고지 A까지 공격해왔다. 이에 유인격멸작전에 흥분한 2중대는 적이 수류탄의 투척거리까지 돌입하자 중대와 대대 81밀리 박격포 화력을 기습적으로 쏟아부어 몰살하듯 격퇴시켰다. 2월 13일 새벽 2시 25분 중공군 1개 중대가 박격포의 지원 하에 무명고지 A로 재차 돌입하였으나, 이 또한 격퇴당했다. 그러자 무명고지 B를 점령중인 중공군 소대 무리는 [[진지공사]]로 [[알박기]][* 이를 요새화해 본진 공략의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으니 정확히는 [[벙커링]]에 가깝다.]를 시전하려 하였으나 18명으로 편성된 특공대가 접근하자 겁에 질려 앞다퉈 달아났고, 덕분에 11시경에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